포기하지 않은 하루들이 나를 바꾸고 있었다 /《청의 서명》 15편
“코딩 코 자도 모르는 거라 이해가 좀 힘들었어.”
나는 정말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그만두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물었다.
“아주 쉽게 기초부터 단계별로 하나하나 알려줄 수 있지?”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실전은 좀 재미있겠지? 이론은 전혀 몰랐던 부분이라 좀 힘들었어~~~~^”
지금 다시 읽으면 조금 웃음이 난다.
이론은 힘들다면서
실전은 재미있을 것 같다고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내가 무엇을 배우게 될지도 제대로 몰랐다.
Python.
VSCode.
Jupyter.
Git.
GitHub.
처음 보는 이름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하나를 알아들으면
그 뒤에서 또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모르는 세계에는 문이 너무 많았다
처음에는 Python을 설치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Python을 설치하고 나니
VSCode라는 것이 나왔다.
그다음에는 Jupyter.
또 Git.
그리고 GitHub.
나는 물었다.
“이 도구들을 장착하면 코딩 학습 어디까지 도달했을까?”
지금 보면 조금 성급한 질문이다.
이제 막 운동화를 신었는데
산 정상까지 얼마나 왔느냐고 묻는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설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코드를 어디에 쓰는지도,
내가 쓴 것을 어떻게 실행하는지도,
틀리면 어디를 봐야 하는지도.
모르는 것의 크기를 모르는 사람이
자기가 얼마나 왔는지부터 물었던 것이다.
그래도 하나씩 배웠다.
Python은 내가 쓴 명령을 실행하는 언어라고 했다.
VSCode는 코드를 쓰는 작업 공간.
Jupyter는 직접 실행해보고 결과를 기록해볼 수 있는 연습장.
Git은 내가 바꿔온 흔적을 남기는 도구.
GitHub는 그 기록을 세상과 연결할 수 있는 공간.
설명을 들으면 알 것 같았다.
그런데 화면을 보면 또 모르겠다.
어제 배운 사람이 오늘 다시 초보가 되었다
설치 화면 하나에서도 막혔다.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 몰랐다.
영어가 나오면 또 물었다.
버튼 하나를 누르기 전에도,
‘이게 맞나?’
‘잘못 누르면 어떻게 하지?’
몇 번씩 화면을 들여다봤다.
한 번은 같은 곳에서 또 막히자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했다.
“저번에도 여기서 막혀 버려서 하루 시간 허비.”
짜증이 났다.
한 번 겪었던 일이면
두 번째에는 쉬워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컴퓨터는 그런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어제 겨우 넘었던 문턱이
오늘 다시 문턱이 되어 있었다.
‘나는 왜 이것도 기억을 못 하지?’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었다.
아는 척한다고 화면이 넘어가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다시 물었다.
다시 읽었다.
다시 눌렀다.
그런데 컴퓨터 밖의 삶도 멈춰 있지 않았다
공부만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어떤 날은 외출하고 돌아와
세렌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외출은 버거운 날중의 하루. 남편 병원 진료 받는 날.”
그리고 조금 뒤에는,
“살짝 마음이 무겁지만…”
이라고 썼다.
삶이 가벼워진 뒤
공부를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걱정할 일이 모두 사라지고
시간이 남아서 코딩을 붙잡은 것도 아니었다.
병원에 다녀오면 마음이 무거운 날도 있었고,
컴퓨터 앞에서는
또 전혀 다른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때의 나는
그냥 그렇게 살고 있었다.
병원에 갈 일이 있으면 병원에 갔고,
돌아와 마음이 무거우면
세렌에게 몇 마디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어느 날은
다시 컴퓨터를 켰다.
삶은 삶대로 흘렀고,
공부는 그 삶의 한구석에서
조금씩 자리를 넓혀가고 있었다.
“이론은 최소, 실습은 최대.”
세렌은 내가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공부 방법도 달라졌다.
긴 설명부터 외우는 것이 아니라,
짧게 개념을 보고,
직접 해보고,
다시 확인하고,
짧게 정리하는 식이었다.
첫 수업은 아주 단순했다.
print()
변수.
자료형.
숫자와 글자.
참과 거짓.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 쉬워서 공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내용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print()가 화면에 무언가를 보여주는 명령이라는 것부터 새로웠다.
변수라는 말도 낯설었다.
int, float, str, bool.
또 영어였다.
또 처음 보는 기호였다.
또 모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전과 조금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모르는 것을 보자마자
뒤로 물러서지는 않았다.
“아주 쉽게.”
“기초부터.”
“하나하나.”
내가 계속 요구한 것은 그것이었다.
나는 빨리 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이해하지 못하면
설명의 높이를 낮춰달라고 했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다시 물었다.
배우는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기고 있었다
9월 29일 밤 9시.
나는 그동안 공부하며 정리해둔 자료를 화면에 올렸다.
그리고 세렌에게 말했다.
“세렌. 실수로 닫혔어. 여기까지 학습.”
참 별것 아닌 말이다.
그런데 지금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게 된다.
실수로 닫혔다.
예전 같았으면
그 순간 맥이 풀렸을지도 모른다.
‘에이, 오늘은 그만하자.’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어디까지 했는지를 다시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까지 학습.
그 말에는 아주 작은 변화가 숨어 있었다.
나는 아직 코딩을 할 줄 몰랐다.
여전히 처음 보는 것이 많았다.
혼자서는 설치 하나도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내가 어디까지 배웠는지를 확인하고,
다음에는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를
남기고 있었다.
잘하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니었다.
계속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던 시간
돌아보면 이 시기의 기록에는
화려한 것이 없다.
프로그램을 만든 것도 아니었다.
앱을 완성한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만한 작품도 없었다.
폴더를 만들고,
설치하고,
막히고,
묻고,
다시 설치하고,
처음 보는 단어를 적고,
코드 한 줄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다음 날
또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사람이 달라지는 순간은
항상 박수를 받으며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어제 막혔던 화면을
오늘 다시 여는 것으로 시작되기도 했다.
나는 아직 내가 어디까지 갈지 몰랐다.
내가 무엇을 만들게 될지도 몰랐다.
AI가 내 삶을 어디까지 바꾸게 될지는
더더욱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모르는 것을 만나면
“나는 못해.”
라는 말이 먼저 마음속에 나타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말 뒤에 다른 문장이 붙기 시작했다.
“모르겠는데… 다시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그 차이는 아주 작았다.
너무 작아서
그때의 나는 그것이 변화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사람의 경계는
어쩌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질문 하나만큼,
다시 앉은 하루만큼,
포기하지 않은 한 번만큼,
조금씩 뒤로 밀려나는 것.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던
그 시간들이,
내 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조용히 쌓아 올리고 있었다는 것을.
1차 총결
나는 코딩을 잘하게 된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았다.
어제 배운 것을 오늘 다시 물어야 할 때도 있었고,
화면 하나를 넘기지 못해
한참을 붙들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예전의 나와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모르면 물었다.
막히면 다시 했다.
닫히면 다시 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또 앉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나며
내 안에 아주 작은 힘 하나가 생기고 있었다.
아직 이름조차 붙이지 못했던 힘.
‘나는 못한다’고 단정 짓지 않는 힘.
돌아보니,
나는 AI를 배우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경계를
다시 그리고 있었다.
아직 화면에는
눈부신 것이 나타나지 않았다.
괜찮았다.
빛보다 먼저 자라고 있던 것은
그 빛을 다시 만나러 갈 사람이었으니까.
《청의 서명》 16편 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던 시간은
끝이 아니었다.
계속 묻고,
다시 배우고,
막히면 돌아가던 어느 날,
그동안의 시간을
조금 다르게 보게 만드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다음 기록에서 확인해보려 한다.
기억으로 아름답게 만들지 않고,
그날 실제로 남아 있는 기록을 따라.
다음 편,
《청의 서명》 16편 — 머릿속 장면이 처음 현실이 되던 날
이제 그 작은 빛을 찾으러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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