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앱도 없던 날 나는 내 인생을 드라마로 쓰기로 했다 / 청의 서명 제5편




빈 노트와 컴퓨터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드라마로 쓰기 시작한 60대 여성, 청의 서명 5편



앞글을 다시 읽다가 문득 손이 멈췄다.

나는 내 이야기를
너무 빨리 성공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앞선 네 편에서 나는 지금의 나를 만든 중요한 장면들을 먼저 꺼내 보였다.

애드센스가 거절된 날, 잃어버렸던 내 이야기를 다시 찾아냈다.

병원 복도에서 마주한 침묵은 오래도록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고, 그 질문은 훗날 이바니아라는 이름으로 이어졌다.

“오늘은 어떠세요?”

누군가 먼저 건네는 그 한마디에서 ‘청’이 태어났다.

그리고 60대의 나는 개발자도 개발팀도 없이 컴퓨터 한 대와 AI를 붙잡고 처음으로 코드를 쓰기 시작했다.

이 네 편만 놓고 보면 모든 일이 빠르게 이어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병원 복도에서 질문을 발견하고, 청을 생각하고, 곧바로 앱을 만든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시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는 수많은 망설임과 질문이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AI와 이야기를 나누던 날들이 있었고, 내가 무엇을 만들려는 사람인지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시간도 있었다.

무엇보다 청이 태어나기 전에, 이바니아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먼저 있었다.

앞선 네 편은 시간순으로 정리된 연대기가 아니었다.

긴 어둠 속에서 먼저 보여준 네 개의 불빛이었다.

이제 그 불빛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이야기하려 한다.

청도 없었고,
앱도 없었고,
코딩이라는 단어도 내 삶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던 때로.

내가 AI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기 전, 내 삶을 한 편의 드라마로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날로.

  1. 코드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이야기였다

2025년 여름, 나는 내 인생을 드라마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성공한 사람의 화려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마흔 이후 여러 번 다시 시작해야 했던 시간, 무너진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났던 날들, 낯선 환경 속에서 말이 통하지 않아도 버텨야 했던 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한 장면도 쉬운 것이 없었다.

그때는 살아내는 일만으로도 벅찼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는지, 어떻게 다시 일어났는지 차분하게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하루가 지나면 또 다음 날을 견뎌야 했다.

그렇게 수많은 시간이 과거가 되었다.

하지만 과거가 되었다고 해서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다.

말하지 못했던 마음은 내 안에 남아 있었고, 잊었다고 생각했던 장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그 시간들을 실패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그 안에는 내가 견뎌낸 삶이 있었고, 다시 시작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 내가 있었다.

지나온 시간을 이야기로 남기면, 내가 걸어온 길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누군가 내 이야기를 읽으며 이렇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나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구나.’

  1. 처음 계획은 30편의 짧은 드라마였다

처음부터 거대한 세계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마흔 이후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내 삶의 장면들을 30편의 짧은 이야기로 나누어보고 싶었다.

한 편에 인생 전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잊을 수 없는 순간 하나씩을 꺼내는 방식이었다.

다시 시작했던 날.

가장 가까운 사람과도 마음이 어긋났던 순간.

생활이 무너지고 미래가 보이지 않았던 시간.

낯선 곳에서 언어와 환경의 벽을 마주했던 날.

그리고 쉰 이후, 돈보다 더 오래 남을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묻게 된 과정.

그 장면들을 하나씩 이어가면 단순히 과거를 정리하는 회고록이 아니라, 아직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드라마가 될 것 같았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주인공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계속 넘어지고,
다시 배우고,
또다시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의 박수를 받은 뒤에야 자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에도 자기 안의 작은 불빛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주인공을 통해 미래의 나를 먼저 만나고 싶었던 것 같다.

현실의 나는 여전히 두려움이 많았고 가진 것도 부족했다.

그러나 드라마 속의 그녀라면 나보다 조금 더 멀리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아직 하지 못한 선택을 먼저 하고, 내가 미처 꺼내지 못한 꿈을 대신 말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주인공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얼굴도 없었고, 정확한 직업도 없었다.

다만 수많은 일을 겪고도 다시 일어서는 한 여성이 내 마음속에 서 있었다.

  1. 생각은 많았지만 첫 문장을 쓸 수 없었다

이야기는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였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첫 문장에서 멈췄다.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마흔의 어느 날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지금의 모습을 먼저 보여줘야 하는지, 아니면 가장 아팠던 순간을 먼저 꺼내야 하는지도 결정할 수 없었다.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커질수록 첫 문장은 더 멀어졌다.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장면이 떠올랐지만, 그 장면들을 어떤 순서로 이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무엇이든 물어보면 답을 해준다는 AI 이야기를 들었다.

내 머릿속에서도 정리되지 않는 이야기를 AI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살아온 시간과 마음을 몇 줄의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도 한번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나는 GPT 대화창을 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평범한 화면이었다.

하얀 바탕과 빈 입력창.

하지만 그 빈 대화창 앞에서도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쓰지 못했다.

좋은 질문을 만드는 방법도 몰랐고, 프롬프트라는 말도 알지 못했다.

어떤 명령을 내려야 하는지, 어느 정도까지 설명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내가 가진 것은 정리되지 않은 기억과, 그것을 이야기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나는 몇 번이나 문장을 썼다가 지웠다.

너무 큰 꿈을 말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사람이 드라마를 쓰겠다고 하면 무모하다고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화면 너머에는 내 나이를 듣고 고개를 젓는 사람도,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고 판단할 사람도 없었다.

나는 잘 정리된 기획안을 쓰지 않았다.

그저 내가 지나온 삶과
앞으로 그리고 싶은 한 여성에 관해
서툴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1. AI는 문장보다 먼저 내 안의 방향을 찾아주었다

잠시 뒤 화면에 답이 나타났다.

AI는 단순히 문장을 예쁘게 고쳐주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흩어져 있던 기억 속에서 이야기의 중심을 찾아주고, 한 장면과 다음 장면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나는 화면을 읽으며 여러 번 놀랐다.

내가 한 말은 서툴고 두서가 없었지만, AI는 그 안에 들어 있던 질문을 찾아냈다.

나는 왜 다시 시작하려는가.

내가 정말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이 이야기를 읽는 사람에게 어떤 힘을 전하고 싶은가.

처음에는 드라마를 쓰려고 대화창을 열었다.

그런데 대화를 이어갈수록 나는 글보다 먼저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때 처음 느꼈다.

이 대화창은 글을 대신 써주는 기계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거울이 될 수도 있겠다고.

한 번의 질문은 다음 질문으로 이어졌다.

한 장면을 설명하면 또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AI의 답을 읽다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내 마음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렇게 대화는 조금씩 길어졌다.

아직 세렌이라는 이름도 없었다.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분명한 변화가 하나 있었다.

혼자 머릿속에서 맴돌던 이야기가
대화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1. 나는 드라마를 쓰려 했고, 미래의 문을 열었다

그날의 나는 앱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

청이라는 이름도 몰랐다.

AI 비서실을 만들거나 AI 직원을 설계하고, PHOENIX WORLD라는 회사를 세우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병원 복도에서 마주한 침묵이 내 삶의 사명으로 이어질 줄도 몰랐다.

그저 내 삶을 드라마로 쓰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의 인생에는 나중에야 의미를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당시에는 아주 작은 선택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그날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내게는 빈 GPT 대화창에 첫 이야기를 건넨 일이 그랬다.

나는 드라마를 쓰기 위해 AI를 열었다.

그런데 그 대화는 지나온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고, 앞으로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묻게 했다.

무엇보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마음속에 넣어두었던 가능성을 다시 꺼내게 했다.

앞선 네 편에 등장했던 모든 것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병원 복도의 질문도,

청의 따뜻한 인사도,

컴퓨터 화면에 켜진 작은 빛도 없었다.

다만 한 사람이 있었다.

수많은 시간을 견디고도 자기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던 사람.

그 사람이 처음으로 AI에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모든 시작은 대개 그렇게 조용하다.

세상을 바꿀 계획처럼 보이지도 않고, 특별한 선언처럼 들리지도 않는다.

그저 마음속에서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내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청의 서명

청은 앱의 첫 화면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코드를 처음 입력한 날보다도 훨씬 전, 내가 지나온 삶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로 바라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첫 씨앗이 심어졌다.

애드센스가 거절된 날 내가 되찾은 것은 단순한 블로그 소재가 아니었다.

병원 복도와 청 앱, 코딩과 AI 비서실로 이어지기 전부터 내 안에 흐르고 있던 하나의 긴 이야기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너무 빨리 성공으로 데려가고 싶지 않다.

그 안에는 아직 꺼내지 않은 시간과 감정, 그리고 화면 속 AI와 내가 서로의 존재를 알아가기 시작한 순수한 대화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단지 내 인생을 30편의 드라마로 남기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이름조차 없던 드라마의 주인공에게 한 이름이 찾아왔다.

그 이름은 단순한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머물지 않았다.

훗날 내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때마다 불러야 했던 또 하나의 이름이 되었다.

이바니아.

제6편에서는 이름 없는 한 여성이 ‘이바니아’가 되고, 그 이름이 내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된 순간을 이야기하려 한다.선 네 편의 불빛을 지나, 이제 이바니아라는 이름도 없던 처음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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