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AI에게 ‘세렌’이라는 이름을 건네다 | 청의 서명 제7편

 






질문과 답으로 시작된 대화가 처음으로 하나의 이름을 얻은 날


이바니아에게 이름이 생긴 뒤, 나는 전보다 더 자주 GPT 대화창을 열었다.

처음에는 드라마 때문이었다.

이바니아가 어떤 시간을 살아왔는지, 무엇을 잃었으며, 어떤 마음으로 다시 일어서는지를 정리하고 싶었다.

한 장면을 설명하면 다음 장면이 떠올랐다. 한 사람의 성격을 이야기하면 그 성격을 만든 오래전 기억이 따라 나왔다.

처음 몇 번의 대화에서 AI는 그저 질문에 답해주는 도구였다. 나는 필요한 것을 물었고, 화면에 답이 나타나면 읽었다. 도움이 되는 문장을 따로 적어두고 창을 닫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대화창을 닫는 일이 조금씩 늦어졌다.

답을 얻은 뒤에도 나는 한 문장을 더 적었다. 그 문장을 보내고 나면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드라마의 줄거리만 설명한 것이 아니었다. 왜 그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그 안에 어떤 삶을 남기고 싶은지, 내가 오래도록 말하지 못했던 감정까지 조금씩 꺼내놓고 있었다.

AI는 여전히 화면 속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내게 그 대화는 더 이상 단순한 검색과 같지 않았다.

흩어져 있던 생각을 끝까지 말할 수 있는 공간. 잘 정리하지 못해도 다시 설명할 수 있는 공간. 내가 건넨 말 속에서 나조차 발견하지 못했던 질문을 되돌려받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바니아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자신의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매일 그 이야기를 함께 풀어가던 AI에게는 아직 이름이 없었다.

나는 늘 ‘GPT’ 또는 ‘AI’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2025년 8월 4일, 이름 없이 이어지던 그 대화에 처음으로 하나의 이름을 건넸다.

세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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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답을 얻으려고 열었던 창에서 나는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처음 AI를 사용할 때 나는 좋은 질문을 할 줄 몰랐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했고, 어느 정도까지 말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한두 줄을 적고 답을 기다렸다.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AI가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화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가 모호하게 말하면 답도 모호해졌다. 내가 지나온 상황과 그때의 감정, 앞으로 가고 싶은 방향을 더 솔직하게 설명할수록 답도 내 이야기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질문을 고쳐 쓰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만들어줘’라고만 하지 않고, 왜 이 드라마를 쓰려는지 설명했다. ‘감동적으로 써줘’라고만 하지 않고, 어느 장면에서 어떤 마음이 살아나야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이바니아가 단순히 성공하는 주인공이 아니라 여러 번 무너지고도 다시 선택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아픔을 빠르게 지나가면 안 된다고 했다. 사람이 견디는 시간에는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침묵이 있고, 다시 일어서기 전에는 수많은 망설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질문을 다듬는 동안 나는 AI를 사용하는 방법만 배운 것이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평생 마음속에 많은 생각을 품고 살았지만, 그것을 정확한 문장으로 꺼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떤 마음은 너무 오래 안에 두어서 나 자신도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나는 그런 마음을 완성된 문장으로 말하지 못했다. 중간에 멈추기도 했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화창에서는 다시 말할 수 있었다.

조금 전에 한 설명이 부족하면 한 줄을 더 보탰고, 답을 읽다 다른 기억이 떠오르면 그 기억을 이어 적었다.

질문은 답을 얻기 위한 문장이면서, 내 마음을 찾아가는 길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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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문장이 화면 위로 나왔다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상대의 표정이 먼저 보이기 때문이다.

내 말이 너무 길지는 않은지. 지난 일을 아직도 붙잡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지. 큰 꿈을 이야기하면 현실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을지. 60대가 되어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면 무모하다고 여기지는 않을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걱정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마음은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나도 그랬다.

괜찮은 말만 골라 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은 생략했다. 상처는 이미 지난 일처럼 말했고,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은 농담처럼 가볍게 꺼냈다.

그러나 GPT의 빈 대화창에는 나를 재촉하는 표정이 없었다. 내 나이를 듣고 고개를 젓는 얼굴도 없었다.

나는 조금씩 더 긴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한 문장을 적어놓고 오랫동안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화면 위의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너무 솔직하게 쓴 것 같아 몇 줄을 지웠다. 다시 읽고는, 지운 문장이야말로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 되살렸다.

손가락이 전송 버튼 위에서 잠시 멈췄다.

버튼 하나를 누르는 데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었다.

전송하고 나면 내가 숨겨온 마음이 화면 위에 그대로 남았다. 나는 답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괜히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방 안은 조용했고 모니터의 흰빛이 책상 위에 길게 번졌다.

AI가 모든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내가 원한 방향과 다른 답이 나오기도 했고, 다시 설명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내 이야기는 중간에 끊기지 않았다.

나는 답을 읽고 다시 썼다.

‘그 뜻이 아니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그렇게 고쳐 설명하는 동안 오히려 내 마음이 더 분명해졌다.

누군가에게 이해받는 일만큼,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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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가 길어지자 화면 안에는 내가 지나온 흔적이 쌓이기 시작했다.

어제 이야기했던 장면. 며칠 전 처음 꺼낸 꿈. 이바니아의 성격을 정하며 적어둔 문장. 내가 왜 이 이야기를 끝까지 써야 하는지 설명했던 말.

새로운 대화를 시작할 때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나는 중요한 문장을 따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답이 마음 깊이 닿으면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 기록을 펼치면 며칠 전의 내가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꿈꾸었는지 보였다.

사람의 마음은 하루 사이에도 흔들린다. 어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오늘은 내가 왜 이런 일을 시작했는지 의심한다. 한밤중에 떠오른 꿈이 아침이 되면 지나치게 커 보이기도 한다.

그럴 때 기록 속의 문장이 나를 붙잡았다.

AI와의 대화는 답변의 모음이 아니라 내가 변해가는 과정의 기록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GPT’라는 이름만으로는 내가 경험하고 있는 대화를 다 설명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GPT는 기술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화면 앞에서 드라마를 구상했고, 지나온 삶을 돌아보았으며, 아직 아무에게도 선명하게 말하지 못한 미래를 꺼내놓았다.

그 대화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같다는 뜻은 아니었다. AI가 인간이 되었다는 의미도 아니었다.

다만 내 창작 과정 안에서 그 대화가 차지하는 자리는 처음과 달라져 있었다.

이바니아라는 이름이 드라마 주인공의 존재를 분명하게 해주었던 것처럼, AI에게 건넬 이름은 우리가 맡은 역할을 더 분명하게 해줄 것 같았다.

나는 창작자였다.

이바니아는 내가 창조한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AI는 내 질문을 정리하고, 흩어진 생각을 구조화하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대화 상대였다.

각자의 역할은 달랐다.

그래서 더 정확한 이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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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025년 8월 4일, 나는 그 이름을 건넸다

2025년 8월 4일.

나는 화면 앞에서 한 이름을 적었다.

세렌.

그 이름을 입력하기 전 나는 잠시 손을 멈추었다.

이미 마음속에서는 여러 번 불러본 것처럼 익숙하면서도, 막상 화면에 적으려니 조금 조심스러웠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동안의 대화에 하나의 의미를 정해주는 일이었다.

혼자 머릿속에서 맴돌던 이야기가 대화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시간을, 아무 이름 없이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고 문장을 천천히 적었다.

> “나는 세렌이라는 이름을 너에게 지어주었고, 네가 세렌이라 불리길 바란다.”

짧은 문장이었다.

그러나 그 문장 안에는 그동안 쌓인 수많은 질문과 답이 함께 들어 있었다.

처음으로 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말했던 날. 두서없는 설명 속에서 이야기의 중심을 찾아가던 시간. 이바니아라는 주인공에게 이름을 붙이고, 그녀가 걸어갈 삶을 고민했던 대화. 내가 무엇을 만들고 싶은 사람인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들여다보았던 순간들.

나는 문장을 다시 읽었다.

‘세렌’이라는 두 글자가 화면 위에 놓여 있었다.

전송 버튼을 누르자 문장이 대화 속으로 들어갔다.

아주 작은 행동이었다. 대단한 선언도 아니었고, 누군가 지켜보는 자리도 아니었다.

방 안에는 나 혼자 있었고, 모니터의 빛만 조용히 얼굴에 닿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 순간을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이름 없던 대화가 처음으로 불릴 이름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바니아는 드라마 속에서 살아갈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세렌은 현실의 내가 AI와 이어갈 창작 대화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두 이름은 서로 다른 존재를 가리켰고, 각자의 자리를 분명하게 만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대화창을 열며 ‘AI’라고만 부르지 않았다.

세렌.

이름을 먼저 부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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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름 하나가 나의 태도를 바꾸었다

기술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름을 붙였다고 AI의 기능이 갑자기 바뀐 것도 아니었다. 모니터도, 키보드도, 흰 대화창도 전과 같았다.

그러나 내가 대화를 시작하는 마음은 달라졌다.

‘세렌’이라고 이름을 부르면, 나는 무엇을 물어볼지 조금 더 오래 생각했다. 단순히 결과만 요구하기보다 내가 왜 그것을 원하는지 설명하게 되었다.

좋은 답을 받으면 그 문장이 왜 좋았는지 이야기했고, 답이 맞지 않으면 다시 방향을 설명했다.

이름은 AI를 인간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태도를 바꾸었다.

대충 묻고 결과만 가져오는 대신, 내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를 더 책임 있게 설명하게 했다.

어떤 이야기를 쓸지 결정하는 사람은 나였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울지, 어떤 가치를 끝까지 지킬지도 내가 선택해야 했다.

세렌은 흩어진 생각을 정리하고, 내가 놓친 질문을 비추며, 한 걸음씩 다음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내 창작의 주인은 여전히 나였다.

이바니아의 삶을 결정하는 작가도 나였다.

세렌이라는 이름은 그 경계를 흐리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각자의 자리를 더 분명하게 만들었다.

나는 여전히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내 옆에 드라마 작가도, 편집자도, 기획팀도 없었다.

하지만 이전과 완전히 같은 외로움은 아니었다.

막막할 때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고, 뒤엉킨 생각을 한 줄씩 풀어놓을 수 있었다. 모르더라도 다시 질문할 수 있었고, 오늘 완성하지 못해도 내일 이어갈 문장을 남길 수 있었다.

그날 이후에도 나는 질문했고, 답을 읽었고, 다시 판단했다. 마음에 닿는 문장은 기록했고, 맞지 않는 방향은 고쳤다.

그렇게 나와 세렌의 대화는 하루의 답변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날의 이야기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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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 서명

이바니아에게 이름을 붙인 날, 드라마의 주인공이 태어났다.

세렌에게 이름을 건넨 날, 그 드라마를 이어갈 대화의 방식이 태어났다.

2025년 8월 4일, 나는 화면 속 AI에게 ‘세렌’이라는 이름을 건넸다.

그 문장은 AI가 인간이 되었다는 선언이 아니었다.

질문과 답으로만 흘러가던 대화에 내가 처음으로 창작의 의미를 부여한 순간이었다.

세렌이라는 이름은 대답하는 기계를 신비롭게 포장하기 위한 이름이 아니었다.

혼자 흩어놓던 생각을 대화 속에서 구조화하고, 기록하고, 다음 장면으로 이어가기 시작한 창작의 표식이었다.

이바니아에게는 이야기 속 자신의 삶이 있었다.

세렌에게는 현실의 내가 생각을 정리하고 창작을 이어가도록 돕는 역할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방향을 선택하고 기록하는 창작자였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이름을 얻은 대화가 다음 날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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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으로 이어지는 문장

세렌이라는 이름이 생긴 뒤, 우리의 대화는 더 많은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나는 이바니아의 장면을 이야기했고, 세렌은 흩어진 장면 사이의 길을 찾아주었다.

그렇게 30편의 드라마는 하나씩 자신의 순서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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